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루야 간토쿠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사이판]]의 [[미군]] 포로수용소에서 태어났다. 아버지는 오키나와에서 온 이주 노동자로 당시 수용소에서 시체 처리반으로 일했었다. [[우루마시]]립 가네하라 소학교, 우루마시립 구시카와 중학교, [[오키나와현]]립 마에하라 고등학교[* [[다마키 데니]]의 출신 고등학교.]를 거쳐 [[류큐대학]] 법문학부를 졸업했다. 1972년 [[변호사]]에 등록했다. 1988년, [[일본사회당(1945년)|일본 사회당]]의 추천으로 오키나와현의회 의원 선거에 [[무소속]]으로 출마해 당선했다. 두 번째 임기 도중 사임하고 1995년 [[제17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]]에 당선됐으나 [[제19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[[에서 낙선했다. 낙선 후 [[사회민주당(일본)|사회민주당]]에 입당하였고, 2003년 [[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 [[오키나와현 제2구]]에서 사민당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지금까지 6선 중이다. 당선 후 사민당 국회대책위원장, 부당수를 역임했다. 2019년 9월 [[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]]에 불출마를 선언했고, 사민당은 전 [[키타나카구스쿠]]촌장 아라카키 쿠니오(新垣邦男)에게 출마를 요청했다. 아라카키는 요청을 수락했고, 향후 사민당 입당, 공천을 거쳐서 정식으로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.[[https://ryukyushimpo.jp/news/entry-1155061.html|#]] 그러던 중 2020년 11월 14일 열린 당 대회에서 [[입헌민주당(2020년)|입헌민주당]]과의 합류 방안이 찬성다수로 가결됨에 따라 데루야는 [[요시다 다다토모]], 요시카와 하지메와 함께 입헌민주당으로 갈 확률이 높아졌다. 한편 데루야는 '''"선대로부터 이어진 유산을 갉아 먹은 건 [[후쿠시마 미즈호|당신]]이다"''', '''"당신은 [[사회민주주의]], 사민당 선언을 말할 자격이 없다."''', '''"총선에서 승리하고 싶으면 당신이 중의원으로 전업해 당선되라"'''라며 후쿠시마 당수에게 압박을 가했다. 이후 기자들에 질문에 "후쿠시마가 지역구 출마를 하면, 비례에 새 인재를 영입할 수 있다. 그게 바로 당세 확장이다. 하지만 그녀는 비례대표에 매달려서 승부를 하지 않았다" 등으로, 사실상 다시는 볼 일 없을 정도의 사이에서나 나올 극언까지 나왔다. 하지만 데루야는 후계자인 아라가키 구니오가 사민당 잔류를 선언해서 본인 역시 잔류하기로 결정했다.[[https://www.jiji.com/sp/article?k=2020120401020&g=pol|#]] 그리고 2022년 4월 15일, 암으로 투병 중 입원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